오리 이원익 기념사업회를 창립하며
오리 이원익은 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친 공직생활 60여년 간 40년을 정승을 지내며 여섯 번이나 영의정에 오른 큰 인물이지만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이 때문에 청렴결백을 온 몸으로 실천한 조선조의 대표적인 청백리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는 안민(安民)을 첫째로 하였으며, 네 차례나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되어 국가의 환란을 막고 나라를 살리는데 앞장섰습니다. 또 치열한 당쟁 중 어느 당파에도 치우치지 않았고, 대동법을 시행하여 서민경제를 일으키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일생 동안 청빈한 생활과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곧은 성품으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공의 진면목이 알려지지 못하고 묻혀 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이에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공의 청백리정신을 널리 알려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혼착한 우리 사회를 밝히는 횃불이 되고자, 각종 사료를 발굴하고 선양(宣揚)하는 일에 매진하기 위해 [오리 이원익 기념사업회]를 창립했습니다. 각계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도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10월 오리 이원익 기념사업회
회장 이 병 서